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미국-스페인 전쟁 (문단 편집) === 메인함 침몰 사건 === 1898년 1월 25일, [[미합중국 해군]]은 [[윌리엄 매킨리]] [[미합중국 대통령]]의 명령에 따라 [[쿠바]] 주재 자국 거류민의 안전 확보 및 보호를 위해 함포 24문을 장착한 배수량 6,682t의 2등[[전함]] ACR[* 장갑순양함(Armored Cruiser)이란 뜻이나, 2등전함(2nd Class Battleship)으로도 분류된다.]-1 USS 메인[* 이 이름은 전드레드노트급 전함 BB-10 메인과 [[몬태나급 전함]] 3번함이 계승한다.] 함을 아바나에 급파했다. 그런데 2월 15일 밤 9시 40분, 메인 함은 아바나 항만에서 동시에 일어난 원인 불명의 2회 폭발과 함께 '''침몰'''했다. 이 사건으로 총 351명의 승조원[* [[장교]] 26명, [[부사관]] 및 [[수병]] 290명, [[해병]] 39명으로 총 355명이 승선했으나 이 중 4명이 하선 중이었다.] 중 261명이 사망[* 장교 2명과 사병 250명이 현장에서, 나머지 9명은 구조된 후 사망했다.]했다. 승조원 침실 밑에서 폭발이 발생한 탓에 사상자가 많았다. 폭발 당시 함장실에서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고 있다가 넘어져 가벼운 부상을 입고 생존했으며 퇴함 작업 지휘 후 마지막으로 퇴함한 최선임 생존자인 [[함장]] 찰스 드와이트 식스비(Charles Dwight Sigsbee) [[대령]] 등 생존자들은 근처에 있던 [[스페인 해군]]이 구조했다. 미국은 커다란 충격과 함께 진상조사에 나섰다. 스페인은 공동조사를 제의했으나 미국이 거부해[* 스페인이 조사하는 척하면서 증거를 조작할지도 모른다고 핑계를 대면서 거부했다나.] 단독조사하여 2월 20일에 [[석탄]]저장고의 자연발화에 의한 탄약유폭[* 이미 사건 당시 많은 '''미 해군 관계자'''들도 이 설을 지지했다. 다른 미국 군함에서도 유사 사례가 발생한 바 있었다.]이라고 발표했다. 반면 미국 조사단은 "조사 결과 [[기뢰]] 폭발로 인해 침몰했다"는 발표를 3월 말에 내놓았다. 다만 누가 의도적으로 공격했다고 명시하지는 않았다. 결국 양국의 입장 차이는 확연히 드러났고 미국의 여론은 복수를 외치고 있었다. 이때 나온 구호가 "메인 함을 기억하라!(Remember the Maine!)"로, 훗날 나온 "[[진주만 공습|진주만을 기억하라!]](Remember the Pearl Harbor!)"의 원조다. 사실 메인 함의 침몰 원인은 아직 정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았다. 이 부분은 미국과 스페인이 모두 동의하는 부분이라고 한다. 기뢰설, 어뢰설, 석탄창고 자연발화설, [[보일러]] 폭발설, 의도적인 폭파설, 포장 실수로 인한 탄약 유폭설 등등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있으나 시대, 조사 주체 등에 따라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다만 당시 미국과 전쟁을 벌일 여력이 없던 스페인이 의도적으로 공격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게 중론이며 생존한 함장 식스비 대령부터가 생존 승조원들을 스페인 해군 [[장교]]들이 침몰하는 전함에서 탄약이 터져 계속 폭발이 일어나는 위험한 상황임에도 이를 무릅쓰고 적극적으로 구조했다는 점을 들어 이를 부정했고 본국발 첫 보고서에서도 범인을 스페인 해군으로 속단치 말 것을 요청했다. 이게 정말 용기가 필요했던 게, 미국 내 반스페인 감정이 팽배한 상황에서 스페인 편을 조금이라도 들었다간 매장당하는 게 순식간이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식스비 대령은 전쟁 발발 후 다시 일선에 복귀한 후 [[소장(계급)|소장]]으로 진급해 [[제독]]으로 영전하고 훗날 자신의 이름을 딴 공원과 해역[* 플로리다 주 드레드거스 케이(Dredgers Key)에 위치한 식스비 공원(Sigsbee Park), [[멕시코 만]] 내에서 가장 수심이 깊은 해역인 Sigsbee Deep. ]도 생기는 등 말년을 비교적 영광스럽게 보냈으며 사후 [[알링턴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일단 1971년에는 보일러실의 폭발이 원인이라고 결론을 내렸으며 1998년에 메인호 폭발 100주년 기념으로 이루어진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조사에서는 선체가 안쪽으로 휜 것이 확인되었고 여러 면에서 기뢰로 추정되는 외부 충격에 의한 침몰로 추정된다는 결과가 나왔다. 2002년에는 과거 스페인 측의 결론과 같은 자연발화로 인한 석탄창고의 화재가 원인이 되어 폭발했다는 결론이 나오기도 했다. 또 다른 가설은 항만방어용 기뢰가 '''우연히''' 유실되어 흘러가다가 '''하필이면''' 메인 함 근처로 다가가서 폭발했다는 것이다. 이는 이후 여러 차례의 조사에서 철판이 안쪽으로 휘었다는 점과 스페인이 메인 함을 의도적으로 격침시킬 이유가 없다는 점에서 지지를 받고 있으나 확증할 증거는 없다. 그 외에도 이 사건을 구실로 전쟁을 일으켰다는 점에서 미국의 자작극이라는 설도 있으나 이쪽도 근거는 부족하다. 인명피해야 그렇다고 하더라도 메인 함은 1895년에 취역해서 3년밖에 안된 전함이고 당시 미국이 보유한 전함은 메인을 포함해서 6척 뿐이었다. 전함이 하루아침에 나오는 것도 아니고 당장 전쟁을 터뜨리려고 하는데 해군의 주력이라고 할 수 있는 전함을 자폭시키기엔 전력 손실이 너무 크다. 어쨌든 사건 당시 미국은 이 사건을 스페인이 일으킨 것으로 몰아서 전쟁의 구실로 삼았다. [[황색언론]]들은 전쟁을 부르짖었고 여론은 폭발했다. 4월 11일에 대통령이 의회에 개입 승인을 요청하자 미 의회는 19일자로 쿠바 독립에 대한 절대적 지지와 함께 모든 노력을 다해 쿠바의 독립을 도울 것임을 의결, 사실상 전쟁을 선언했다. 이를 전달받은 스페인 역시 4월 23일에 미국에 [[선전포고]]하면서 전쟁이 시작되었다. 메인 함의 선체는 미 당국이 1911년에 인양했다. 외부적 원인이 사고라는 결론을 내리기는 했으나 배 바닥은 자세히 검사해 보지 않았다. 그리고 1912년에 바깥 바다로 끌고 가서 그냥 가라앉혀 버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